이런 젠장! 저런 멍청한 놈이 내 동료라니… 저 놈을 당장 두들겨 깨워 설교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쓰러진 동료와 깨진 시험관을 쳐다보며 아직도 멍하니 서 있다. 누굴 탓할 시간이 있다면 우선 위기를 벗어날 궁리부터 해야 한다. 깨진 시험관에서 나오는 연기는 앞으로 수 분 내에 우리 모두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하다.

내가 최 교수님 밑에서 일한 지도 꽤 됐다. 최 교수님은 일말의 인내심도 다정함도 없는, 빈말로도 인격자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이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낸 선구자다.

교수님은 다른 사람을 남겨둔 채 실험실을 비우는 법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화학물은 모두 잠가놓았다. 보안이 철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항상 누군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훔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남들을 감시하는 모습은 거의 강박증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은 그의 아들과 딸뿐이었다.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 오늘은 이상한 액체가 담긴 시험관을 책상에 올려둔 채 나갔다는 게 정말 이상했다. 항상 쓰는 모자도 잊은 채, 그 시험관을 보관함에 잘 넣어두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저 시험관이 어디에 쓰는 것인지, 교수님이 평소 뭘 연구하시는지는 실험실 조수 중 아무도 몰랐다. 교수님이 연구에 관해 말씀해 주신 건 단 하나. 바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유용하지만 잘못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상상치 못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씀.

그런 면에서 저 멍청한 놈의 손은 단단히 잘못된 손인 모양이다. 처음에 시험관을 들 때부터 불안불안하더라니, 보관함 코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꼴이란…. 시험관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실험실 곳곳에 퍼졌고 실험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시험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마셨다. 연기를 잔뜩 들이마신 저 놈의 눈이 뒤집히며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니 이건 강력한 독성을 가진 물질임에 틀림없다.

다급히 박사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박사님쪽에도 문제가 발생한 듯하다. 박사님은 헉헉거리며 달리고있었고, 통신망이 안 좋은지 전화가 계속 버벅거렸다. 상황을 설명하자이 머저리 같은 놈들!… 한시간…다 죽어… 해독제…… 금고…” 라는 말만 들리며 금방 통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자 부재중 메시지로 곧장 연결됐다. 더 이상 도와줄 사람도, 낭비할 시간도 없다.

카트를 치우고 금고를 열고자 했으나 금고는 잠겨있었다. 교수님 책상의 서랍을 다 뒤져봤지만 열리는 서랍은 단 하나뿐이다. 이 안에 든 물건이 날 살릴 수 있을까? 남은 희망은 이것뿐이다!